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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야만인을 기다리며
저자 : 존 쿳시
출판사 : 들녘
출판년 : 2003
ISBN : 8975273857

책소개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존 쿳시는 이미『추락』등의 작품으로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2회 수상한 바 있는 역량있는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선과 악, 진실과 허위, 쾌락과 고통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한 치밀한 탐구가 주조를 이루는데,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저자의 분신인 주인공을 과감히 밀어넣은 후 길어낸 내적 고백이기에 그의 사유는 더욱 빛이 난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변경을 통치하는 한 치안판사의 내적 고백을 통해 제국의 모순 뿐 아니라, 제국의 일원으로 봉사할 수 밖에 없는 판사 개인의 부조리를 묻고 있는 작품.

제국의 충실한 하인인 '나'는 주민 3천명이 사는 변경을 통치하는 치안판사로, 몇십 년 동안 자그마한 변경 정착지의 일들을 관장하면서 제국의 정책에 관한 것일랑 애써 무시하며 살아온다. 하지만 취조 전문가들이 도착하면서 무죄한 원주민들을 '반역자'로 몰아 잔인하고 부당하게 대하는 것을 목격한 후 희생자를 동정하게 되고 급기야 제국의 적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제국'이란 억압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타자의 존재 여부에 상관 없이 타자를 만들어내고 조작된 정보를 유통시키며 끊임없이 '상상'속의 '야만인'을 재생산해 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복잡한 문제에 휘말려들지 않으려 애쓰지만 종래엔 '정의'에 몸담고야 마는 치안판사의 행로를 통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인간은 애초에 정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물질적 이익에 부합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인간 본성'의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심층적인 추적이 시종일관 작품을 묵직하게 지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재미'라는 한마리의 토끼 또한 놓치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야만'의 자연과 문명에 대한 아련함, '관계와 소통'을 묻는 듯한 에로틱한 묘사까지, 아마도 그 모든 것이 그림자처럼 '인생'의 또다른 의미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에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 듯. 아름다운 묘사와 짧은 단문의 매력은 그의 작품을 만끽하게 하는 또하나의 요소다.

목차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내가 터무니없는 두 죄수들을 대령에게 넘기며 '여기 있소, 대령. 당신이 전문가니까 알아서 처리하시오'라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강 위쪽으로 사냥이나 갔다 와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지도 않고, 아니면 읽더라도 무관심하게 대충 훑어보고 수사라는 말이 무슨 의미이며 돌 밑에 깔려 있는 통곡의 요정처럼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 그의 보고서에 봉인을 했더라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현명하게 처신했더라면, 어쩌면 나는 지금쯤, 도발적인 것들이 끝나고 변방에서의 불안감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냥이나 매사냥을 하고 여자에 대한 정욕을 즐기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말을 타고 떠나지 못했다. 나는 얼마 동안, 연장을 보관하는 곡물창고 옆 오두막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밤중에 불을 들고 들어가서 직접 보았다.